분류없음2013.03.11 13:26

SK Planet으로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흔히 하는 얘기대로 회사에 적응하는 시기인지라,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라는 판단은 좀 더 뒤로 미룬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중이다. 물론, 이건 전사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내가 하려는 일만 놓고 본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일을 진행 중이다. :-)

중간에 잠깐 창업이라는 것을 해 보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면 나에게는 이번 직장이 4번째 직장이다. 그것은 곧 3번의 이직을 경험했다는 얘기. 가장 최근 NC를 나올 때 누군가(사실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왜 NC를 나오려하냐고 물었고, 그 때 대답했던 것이 '미래가 두렵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질까봐'라는 얘기를 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모든 이직은 어찌 보면 두려운 상황에 놓이기 싫은 마음에 그 상황을 탈피하고자 하는 맘미 맞물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첫번째 직장은 와이즈엔진이라는 곳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 있었던 회사였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제로보드를 만든 고영수씨. 고영수씨 말고도 정말 실력 있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회사에 들어가서 느꼈던 점은 내가 정말 형편없는 개발자라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대학교때 프로그래밍 경진대회에 자주 나가고 좋은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건 대회 출제용으로 만들어진 Toy Program에 불과했던 것이고, 실제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는 알아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았다. 코드 버전 관리부터 시작해서, 자바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고(디자인패턴같은 것도 전혀 몰랐었다), 리눅스 환경도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로 어색했다. 다행히 팀장 역할을 하던 분이 다른 부분을 몰라도 잘 할 수 있는 모듈을(SQL 비슷한 언어를 하나 만든 후에, 그 언어로 여러 웹페이지에 산재된 데이터들을 원하는 조건에 맞춰서 하나의 테이블처럼 모아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모듈) 떼어서 맡겼고, 그 일을 맡아서 수행하면서 다행히 다른 분들한테는 폐 안 끼치고 밥값은 하고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2001년 11월쯤인가, IT 관련 뉴스를 보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다. 정재웅이라는 고등학교 친구가 기사에 나왔는데, Java 쪽에서 가장 큰 컨퍼런스인 JavaOne 컨퍼런스에서 티맥스에서 만든 JEUS라는 WAS가 J2EE 1.2 인증인가를 세계 최초로 받은 것 관련하여 발표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 기억에 재웅이는 98년까지도 프로그래밍을 많이 해 본 경험이 있거나 그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티맥스에서 2~3년 일한 후에 JEUS라는 WAS를 만들어서 JavaOne 컨퍼런스에서 발표까지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티맥스라는 회사를 대학원때부터 옆에서 보아왔기에 그 회사에 가면 얼마나 일을 많이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런 회사는 절대 안 간다고 생각했는데, 첫번째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실력이 없는지를 느끼고 있던 차에 그 기사를 보고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결혼을 슬슬 준비하고 있었고, 2001년에 터진 9/11 사태로 나의 첫 직장은 미국 쪽 회사에서 받기로 하던 투자 건이 연기되면서 2001년 막판에는 월급이 30% 정도 줄어서 지급되고 있었던 상황. 뭔가 인연이 닿으려는지 2001년 12월에 미리 얻어 놓은 신혼집을 살펴 보러 갔다가 친구와 연락되어 분당의 티맥스 사무실에 들렀다가, 지나가던 박대연 교수님이 친구와 얘기하는 나를 보고 '쟤는 누구냐'고 물으셨다가 이차저차되어 티맥스에서 입사 제의를 받게 된다.

그 때, 아내(가 될 사람)에게 대충 이런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빨리 배우고, 열심히 노력할 자신은 있는데, 지금은 너무 실력이 없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살면서 내가 정말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무지막지하게 일이 많은 회사지만 지옥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다 보면 내가 정말 실력이 늘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는 티맥스에 들어가고 싶다."고. (마침 처형도 신혼집 근처에서 살고 있고 해서 아내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었으나 정말로 주 당 100시간, 364일 출근할 지 알았다면 승낙을 안 했을 것 같다. :-)

그렇게 티맥스로 이직하고, 그 곳에서는 Tibero라는 RDBMS를 만드는 팀에 들어가서 4년 동안 일을 하게 된다. 주로 했던 일은 RDBMS의 storage system, transaction system, logging/recovery system, 그리고 data dictionary 및 request handler 등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당연히 혼자 한 것은 아니고 8명 정도 팀을 이뤘고, 팀 사람들끼리는 나름 죽이 잘 맞아서 비록 일은 많아도(일정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떨어져도 ㅎㅎ) 일 자체는 재미있게 몰두해서 했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다가, 2005년부터 구글이라는 회사가 IT 업계에 화두가 되면서, 나 또한 그 회사를 관심있게 지켜 보게 되었다. GFS라는 논문도 그렇고, MapReduce라는 논문도 그렇고. 그걸 보고 또 한 번 2001년에 느꼈던 충격을 먹게 되는데, 티맥스에서 개발하고 지내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좋기는 했는데, 뭐랄까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프레임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나의 기계에서 어떻게 하면 최적화할 지를 고민하면서, 연속해서 읽어야 할 데이터는 X, X+1 주소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memory bus bottleneck를 막기 위해 X, X+8에 저장해서 읽어 내고 있고, lock만 하더라도 spinlock을 쓸 지, readers-writer lock을 쓸 지, 그리고 lock을 거는 단위도 hash bucket head에 걸 때와 실제 hash bucket node에 걸 때를 구분해서 쓰고 있는데, 구글은 그런 류의 최적화가 아니라 몇 천대, 몇 만대의 서버를 분산 시스템으로 연결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것이다. 

그 순간 내가 하는 고민들이 너무 국지적인 최적화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내가 지금 열심히 쌓아 올린 지식들이라는 것이 상당히 많은 부분 쓸모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려면 티맥스에 오는 것을 결심했던 것처럼 새로운 기술 변화에 대해 또 도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2005년 가을에 이 다음(그 당시 생각으로는 2007년쯤) 직장은 구글로 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렇게 구글의 시스템 관련해서 공부도 하면서, 원래 주어진 일도 열심히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도중, 김택진 사장님과 연결이 되고 엔씨에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려 하는데 구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그 때 어떤 책에서 똑같은 규모의 검색 트래픽을 처리하는데 구글은 야후의 1/3 정도의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규모 인터넷 서비스를 하려면 기술적으로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와서 그런 부분을 담당해 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아서 엔씨 입사를 결정하였다.

그러니까 엔씨를 갈 때는 뭔가 인프라시스템 개발자로 제안을 받았는데, 결국 서비스 조직의 총괄을 맡게 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취업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지인들에게 얘기하곤 했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경력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어서 초반에 무척 당황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때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기에 돌이켜 보면 나에게 도움이 된 취업 사기라고 생각한다. 신일숙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삶의 의미를 가진다. :-)

2006년 2월에 엔씨에 입사하고 거의 6년이 되었을 무렵인 2012년 1월. 사실은 2011년 말부터 개인적으로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2010년부터 센터장이라는(센터-실-팀 구조)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2011년 하반기부터는 내가 하는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실질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2011년 상반기까지는 실장도 겸임하면서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는 실제로 그 프로젝트 관련해서 구체적인 의견도 내고 어떤 부분은 직접 정리하고 하던 게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정말 조직 관리만 하는 상황...

엔씨라는 곳에서 나라는 사람이 해야 하는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조직장의 역할이라는 것은 연관 조직간 이슈가 생겼을 때 이슈 해결, 그리고 조직이 하는 일을 대변해서 회사에 설명하는 것, 그리고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이해해서 그 부분들이 조직원들도 같이 바라볼 수 있도록 공유하는 일 등등. 이미 6년이라는 시간을 다녔고, 어떤 얘기는 누구와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은 어떤 단계로 풀어 나가야 하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고, 그리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었다.

엔씨에서 계속 머물면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물리적인 일의 양이 적다 많다의 문제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흘러갈 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이 되고, 그 예측 하에서 아주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 계속될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엔씨 안에서만 유효한(엔씨 안에서 어떻게 일이 흘러갈 지 알고, 어떻게 일을 풀어 나갈지는 알지만, 다른 회사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것이기에) 것이라면, 만약 내가 자의건 타의건 엔씨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될 경우 나란 사람은 무슨 가치를 지녔다고 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 코딩을 해 본지도 몇 년이 지났고, 그렇다고 뛰어난 디자인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뭔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것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정작 그 환경을 배제하고 바라본 나라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첫번째 든 생각은 다시 코딩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는 코딩을 포함하여 무엇이 되었든 내가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내가 정말로 누군가에게 일을 할당하거나 여러 이해 관계자들을 조율하는 식의 메타적인 일 말고,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이 생각을 2012년 1월에 하고서 바로 회사를 나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이미 맡고 있던 조직이 조금은 더 안정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작년 말까지만 회사를 다니고 그 이후에는 새로운 회사를 가건, 아니면 창업을 하건 간에 뭔가 변화라는 것을 해 보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다, 결국 작년 여름에 회사 전체적으로 많은 구조가 변하는 시기가 왔고, 그 때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라 생각하여 작년 9월 초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몇 달 동안 일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건, 아직은 내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고, 그 일의 결과에 대해서 평가만 하고, 일을 하기 위한 구도와 환경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어떤 것에 빠져서 생각해 보고, 뭔가 해결하기 위한 안을 내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일(그것이 단순 타이핑이라고 해도)들을 아직은 할 수 있구나라고 느낀 점이 가장 기분 좋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있었던 3번의 이직은 항상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그 당시 하고 있었던 일이 맘에 안 들거나 그 직장에서 힘들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현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미래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답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직을 결심했던 것 같다.

SK Planet의 경우에는 NC를 떠나면서 바로 생각했던 그 다음 단계는 아니었고, 이 글과는 딱 맞지 않아서 여기서 풀어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여러 상황과 사건들을 거치면서 합류하게 된 회사이기는 하지만, 이 때까지의 이직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도전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SK Planet에서의 새로운 생활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정말 서비스에도 국경이 없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미 와 있기도 하고. 그리고 모바일이 더욱 더 중심이 되고, 이런 현상이 조금 더 심화되면서 Internet of Things라는 불리는 다양한 장치를 포함하는 서비스들이 더 많이 나올 거라고 본다. NC의 오픈마루 생활을 통해서 웹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서비스라는 것을 배우고 익혔다면, 이제는 모바일을 중심으로 여러 장치를 포괄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와이즈엔진, 티맥스소프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엔씨소프트까지. 내가 일이라는 것을 배우고 해 온 모든 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시기가 있었기에 항상 그 다음 단계가 가능했었던 것 같다. SK Planet도 정말 무언가 몰두해서 해 볼 수 있고, 그래서 내 스스로 돌이켜보며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되기를 희망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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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범준 김범준티스토리
분류없음2013.02.02 01:06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1월 4일이니까 거의 한 달을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다(못했다).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각한 것이, 구애받지는 않되 짧지 않은 글을 써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고 정리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었는데, 남들은 새해를 맞아 결심하는 마당에 새해가 되자마자 생각한 것을 행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뭔가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들이 많았던 한 달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대로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은 애써 무엇을 정리하려하기보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온전히 그냥 순간의 내 느낌에만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은 2월 2일. 2002년 2월 2일에 결혼했으니 결혼한 지 11주년되는 날. 그리고 어제는 2월 1일.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날이다. 2013년의 2월은, 이렇게 개인의 자그마한 인생에 몇 가지 이정표와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SK Planet으로부터 나와 같이 일하는 팀이 모두(라고 해봐야 나를 포함하여 3명이지만) SK Planet으로 들어와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Acqui-hire 형태의 제안이 왔고, 최종적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이렇게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비스에 대한 관심보다는 팀에 대한 관심으로 진행된 일이기에, 일일수학 서비스는 개인적인 취미(?) 생활로 계속 해 가기로 했다. SK Planet에서는 원한다면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로 생각하여 이후에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하였으나, 회사에서 서비스 자체에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서비스가 회사에 속해 있을 때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서비스가 말라 죽어가는 상황을 봤었기 때문에 그냥 개인적인 취미 활동으로 하기로 했고, 법인은 청산 절차를 진행 중.


일일수학은 좀 더 서비스 컨셉을 뾰족하게 가다듬어서 실제로 사용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연산 문제 부분을 정말 쓰기 편하고 아이들의 학습 결과를 살펴 볼 수 있는 식으로 갈 지, 아니면 문제를 푼 결과에 따라 적정 난이도의 문제를 낸다는 컨셉에 걸맞게 각 단원을 대표하는 몇 가지 핵심적이면서도 어려운 유형의 문제와, 형태는 비슷하나 여러 난이도가 존재할 수 있는 유형의 문제로 발전시킬지는 고민 중. 어차피 큰 애는 꾸준히 수학 공부를 할 수밖에 없으니 큰 애가 어려워하는 문제 좀 봐 주다가 좋은 문제들을 계속 추가시켜 나갈까도 고민 중이다.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기 위해서는 개인 시간을 좀 빼서 작업해야 할 부분도 있고, 금전적으로도 약간 들어가는 부분이 있긴 하겠으나, 그래도 애초에 서비스를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무언가 노력이나 금전적인 부분을 쓴다고 할 때, 이렇게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 중 하나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한 사용자 분이 보낸 메일에서도 "많이 이용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으니... :-)


실질적으로 Startup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생활은 작년 7월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딱 반 년 정도만 한 셈인데, 이 정도의 경험으로 startup 생활은 이렇더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전문연구요원으로 논산훈련소에서 4주 훈련받은 것 가지고서 군 생활이란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startup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미처 경험을 못 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내가 모자란 점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짧은 6개월의 생활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정말 내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거다. 아무 조건 없이 여러 형태로 도움 준 분들, 그리고 힘낼 수 있도록 격려를 해 준 분들, 부족함이 많은데도 좋게 봐 주시고 여러 좋은 형태의 제안을 주신 분들. 모두 다 너무 고마운 분들이고, 감사한 분들이고, 운 좋게도 그런 좋은 분들이 내 옆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 감사하게 된 것이 정말 지난 6개월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가장 행복한 일인 것 같다.


2월. 28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더욱 설렐 수 있는 그런 달. 약간 모자라기에, 오히려 더 소중함을 느끼고 더 설렐 수 있는지도 모른다.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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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범준 김범준티스토리
분류없음2013.01.04 16:11

2010년 6월부터 2012년 7월 말까지 내가 엔씨소프트에서 했던 일은 빅데이터와 관련된 일이었다. 회사에서 나에게 맡긴 공식 직함은 '데이터센터'의 센터장이었으나, 그 업무와 관련하여 조직원들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또 어떤 경쟁력(회사 내에서건, 회사 밖과 비교해서건)을 갖추어 나갈 것인가 고민하다 2010년 7월부터 빅데이터라는 말과 Data Scientist/Engineer라는 말을 포함하여 조직과 조직원의 비전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그리고 아마 올해도, 빅데이터라는 말이 엄청나게 화두였는데 엔씨소프트 내부적으로는 2010년부터(조금 거슬러올라가면 2009년부터)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했었다. AION의 경우 하루에 떨어지는 게임 로그량이 350G 정도 되었고, 작년 여름에는 리니지도 새로운 로그 포맷으로 바꾼데다가 블레이드앤소울까지 서비스를 시작하여 하루에 떨어지는 데이터만 해도 1T 정도였었으니 전통적인 RDBMS에 로그를 담아서 처리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렇게 2년을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기술(?)을 업무에 적용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결과물을 내는 업무 환경에 있다가 2012년 여름 회사를 나오게 되었는데, 지난 2년간 빅데이터와 관련되어 얻은 개인적인 결론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려본다면 바로 서비스 디자인의 중요성이다. 좀 더 빅데이터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말해 본다면,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 디자인의 중요성.

빅데이터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링크드인이라는 회사의 예를 들어서 얘기해 보면, 링크드인의 Chief Data Scientist였던 DJ Patil이라는 사람이 처음 Data Science 조직을 만들고 나서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여러 조직에게 제공했지만 그 결과가 제대로 쓰이지 않아서 결국 DJ Patil이 담당하는 조직 내에서 아예 서비스를 하나 직접 만들어서 보여주었고, 그 결과 해당 조직에서 만든 서비스를 링크드의 실제 웹서비스로 제공하면서 회사와 서비스가 좀 더 data driven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엔씨소프트를 떠나기 전에 어떤 한 분이 나에게 이후의 career와 관련하여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고, 그 분이 생각하는 career중 하나가 바로 Data Scientist였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보니 그 분은 데이터 분석을 하는 일에는 굉장히 재미를 느끼고 있었으나, 좋은 데이터 분석 결과를 다른 조직에서 왜 제대로 사용을 못하는지에 대해서 약간 불만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았다.

그 분께 조언 드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2년간 일을 해 보니 결국 데이터 분석을 잘 했는데 다른 조직에서 왜 안 써줄까 하는 것은 그냥 데이터 쪽을 다루는 사람이 자기의 업무 영역에 선을 그어 놓고서 나는 잘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못할까 하는 생각과 같은 것 같다. BigData와 전통적인 Business Intelligence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빅데이터로 유명한 구글/아마존/페이스북/링크드인과 같은 회사는 데이터가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이미 그 회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전달되어 바로 이용되지만, 전통적인 B.I.는 데이터 분석 결과가 사람들에게 제공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앞으로 빅데이터와 관련하여 정말 중요한 사람은 데이터 분석가도 아니고, Hadoop으로 대표되는 어떤 기술을 잘 알고 사용하는 엔지니어도 아니라, 실제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그 서비스에서 나온 데이터를 해당 서비스에서 입력으로 사용하여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서비스)를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빅데이터라는 말이 굉장히 기술적인 용어같지만, 결국 어떤 트렌디한 말이나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핵심은 실제로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수단으로 데이터가(사람이 아닌 시스템 단에서 자동으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빅데이터 시장은, 기업 내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 등으로 인해서 사실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기획해서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B.I. 업무와 관련하여 새롭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용역을 팔고 있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현대카드에서 내놓은 마이메뉴 정도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인듯.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대카드의 마이메뉴 서비스도 RDBMS 한 대 정도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양에 기반한 서비스다.(라고 추정한다. 귀찮아서 추정의 공식은 생략. ㅎㅎ)

결국 핵심은 '빅'이 아니라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는 서비스를 만들 것인가이고, 결국 중요한 건 분석이나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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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범준 김범준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