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2.11.12 09:29

이 블로그를 만들고 두번째로 썼던 글이 "플랫폼을 하기 전에 살아 남을 궁리부터" 라는 글이었는데, 그 때 댓글에서 잠깐 얘기했던 그 당시 오픈마루의 상황에 대해 잠깐 얘기를 해볼까 한다.

오픈마루가 만들어진 2006년은 Web 2.0이라는 단어가 가장 유행하던 때였으며, 소위 말하는 한국식 포탈이 아닌 플랫폼으로서의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오픈마루의 정체성처럼 생각되는 시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국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결정들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에, 오픈마루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든 오픈마루 안의 내부 환경이든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정말 나의 부족함에 안타까운 마음뿐이지만, 어쨌건 그 때 내가 스스로를 옭아맨 생각 중 하나가 바로 NC라는 회사가 자그마한 성공을 위해서 오픈마루라는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저러한 생각이 있었기에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지만, 저 생각은 결국 우리가 거두어야 하는 성공의 무게감을 더 가중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조직 전체가 가벼운 발걸음보다는 무겁게 움직이게 되었던 부분이 있다.

오픈마루의 미션이 NCsoft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작고 가볍게 서비스를 만들어서 거두는 작은 성공(여기서의 '작은'이 의미하는 것은 1년에 몇십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라고 보면 될 듯)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서 더 큰 성공의 모습을 그리게 되고, 그 당시 Web 2.0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자연스럽게 플랫폼이라는 키워드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나온 전략(?)이, 바로 세상에 공개된 myID와 세상에 공개되지도 못하고 나중에 접혀버린 myDisk라는 프로젝트였다. 

그 당시 오픈아이디라는 기술을 선택한 것은 그 기술 자체가 지향하는 가치나 철학이 맘에 드는 것도 있었지만, (일단은 플랫폼을 한다는 커다란 전제 하에서 봤을 때) 오픈아이디 기술을 택하는 것이 사업적으로 오픈마루에게 이득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가 A라는 서비스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 A라는 서비스가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건 B, C, D라는 서비스를 만든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런데 만약 우리가 만든 A, B, C, D라는 서비스가 모두 myID.net이라는 오픈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오픈아이디를 사용하는 Z라는 서비스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그 Z라는 서비스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오픈아이디 서비스가 myID.net이라면 비록 그 서비스는 외부의 것이라도 오픈마루가 그 사용자가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부분은 오픈아이디라고 하면 ID/PW 쪽만을 다루는 인증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myID.net을 통해서 하고자 했던 것은 그 아이디를 대표하는 프로필과 그 아이디와 다른 아이디간의 관계를 모두 myID.net에 담으려고 생각했었다. 

즉 어떤 아이디가 A, B, C라는 서비스를 사용한다면 그 정보가 본인의 동의 하에 myID.net 프로필에 담기게 되고, A라는 서비스에서 맺어진 친구 관계가 A라는 서비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myID.net 에서 제공하는 주소록에 담기게 되어 나중에 본인이 동의할 경우 myID.net을 이용하는 여러 서비스에서 그 주소록을 공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myID.net을 통해 노렸던(?) 것은, 오픈아이디라는 기술이 사용자 중심적인 인증 시스템이기도 했었지만, 사업적인 관점에서 오픈아이디를 이용하는 다른 서비스의 성공이 곧 myID.net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러한 성공이 다시 또 이후에 myID.net에 참여하는 다른 서비스의 성공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연결 구조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투데이와 스프링노트, 그리고 라이프팟까지는 이런 흐름이 약간 보였기도 했었다. 

그리고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myDisk라는 프로젝트였다. 이것은 요즘 유행하는 개인용 저장 클라우드 서비스 컨셉이었는데, myID를 이용하는 모든 사용자마다 10G의 용량을 제공하고, 이것을 myID를 이용하는 다른 서비스에서도 API를 통해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개인용 사진 앨범 서비스가 나왔고, 그 서비스가 myID.net을 이용한다면 그 서비스에서는 ID당 10G의 용량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물론 여러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용자라면 각 서비스당 10G가 아니라 한 아이디당 10G인 거지만) 이렇게 되면 개별 서비스를 만드는 쪽에서는 여러 가지 부담(스토리지 비용, 백업 처리 등)이 없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서비스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A라는 서비스에 올린 사진은 어차피 A라는 서비스의 것이 아니라 그 사용자의 것이므로(data portability 참조), 그 사용자가 B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B라는 서비스에서 API를 이용하여 쉽게 그 사진을 불러오고 B라는 서비스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결국 오픈마루가 확보하고 싶었던 것은, 사용자의 서비스 사용 기록, 프로필, 관계 정보(주소록 정보), 그리고 그 사용자가 올린 컨텐트와 관련된 메타데이터였고, myID라는 서비스와 myDisk라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최대한 많은 3rd party 서비스를 끌어 당겨서 내부건 외부건간에 어떤 서비스라도 하나만 성공하면 그 서비스의 성공으로 인한 과실이 오픈마루가 제공하는 플랫폼 안으로도 들어올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플랫폼 내부 안에 쌓인 메타데이터들은 이후 다른 서비스가 myID와 myDisk를 기반으로 만들어질 때 다시 또 그 서비스들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더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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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오픈마루가 NCsoft 안에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저렇게 큰 그림을 그릴 생각도 안 했겠지만, 사실 NCsoft 안에 있었더라도 저런 그림은 그리지 말았어야 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얘기일 수 있다. A라는 서비스 하나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어차피 서비스의 성공 확률은 10%가 안 되는데 그 확률에 조직의 운명을 걸 수 없다. 성공 확률을 최대한 높이는 것은 우리도 여러 개의 서비스를 만들고, 또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개의 서비스와 myID / myDisk를 연동하여 그 서비스 중 한 두 개라도 성공할 때 그 성공의 과실이 우리 쪽으로도 이어지게 하는 것이 전체적인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라는 논리.

이러한 논리 하에 오픈마루는 하나의 서비스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방향 하에 각 서비스 자체만 생각했을때의 완성도보다 이후 플랫폼으로서 동작할 때를 생각한 서비스 기획과 개발이 이루어졌었다. 그 당시 스프링노트를 만들던 팀과 마이아이디를 만들던 팀 간에 논쟁도 참 엄청났었다. : ) 스프링노트 팀은 마이아이디의 로드맵과는 별도로 그 서비스 자체적인 로드맵으로 발전시키길 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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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이라고 말할 때,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API를 떠올린다. 하지만, 플랫폼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속뜻은,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미 형성되어 있는 어떤 커다란 문화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는 우리가 흔히 낚시질이라고 폄하하는 부분은 있으나 뉴스라는 컨텐트를 소비하는 데 있어서 이미 너무나 커다랗게 형성되어 버린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뉴스 사이트들이 네이버의 변화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뉴스에 관한한 네이버를 뉴스 유통 플랫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또 다른 예로, 카카오톡이 애니팡으로 대표되는 게임 퍼블리싱 플랫폼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카카오톡이 API를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라(물론 API 제공은 필요 조건이긴 하지만) 게임에서 필요로 하는 하트라는 것을 요청하는 것이 크게 거리낌이 없는 메시징 문화가 이미 카톡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비교하여 설명하면, SKT, KT, LGT가 어차피 SMS 시스템이 있으니 애플처럼 게임센터 앱을 하나 오픈한 후에 3rd party 게임 업체들에게 API를 제공하고 그 API를 이용하여 SMS 발송을 무료로 해주면 카톡에서의 애니팡처럼 큰 성공을 거둘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기능적 관점에서는 똑같을지 몰라도, 카톡 메시지라는 것이 주는 정서적인 느낌과 SMS가 주는 정서적인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애니팡이 카카오톡을 이용해서 하트를 날린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해서 특히나 개발자 출신들이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서비스를 기능들의 집합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비스는 절대로 기능들의 집합이 아니며 그 서비스가 생기는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형성된 하나의 문화와 같다. 

그리고 플랫폼이라는 것은 여러 서비스들 중에서, 그러한 문화라는 것이 굉장히 널리 퍼져 있으면서도 확고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3rd party 업체들이 봤을 때 그 문화라는 것에 올라타서 이용하고 싶은 그 무엇이 명확히 존재하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플랫폼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성공한 서비스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을진데, 우리가 플랫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서비스는 더욱 더 하루 아침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그 서비스 자체가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하고 그 매력으로 인해 다른 데서 찾아 보기 힘든 '문화'라는 것이 넓고도 깊게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는 '플랫폼을 하기 전에 살아남을 궁리부터'라고 적었지만, 그것은 미래를 전혀 보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급급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로 아주 작더라도 서비스가 진화하는 그 단계단계마다 그 시점에서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서, 비록 아주 좁고 얕더라도 그 서비스만의 색깔과 문화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중은 결국은 언젠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거창하고 큰 머나먼 계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순간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현재에 충실할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의 제프베조스 말처럼 대부분의 위대한 일이 피자 2판 정도를 나눠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 수 이하의 팀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결국 이러한 제약이 어쩔 수 없이 현재에 충실할 수 있게끔 유도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머니투데이에 실린 노정석 대표의 인터뷰에서 나왔던 것처럼 "어떠한 진화 단계에서 새로운 적자(適者)가 생기는 것이고, 이 적자가 카테고리를 확장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플랫폼이라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얘기도 비슷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카테고리라고 하는 것도 흔히 생각하는 거창한 비즈니스 도메인 성격의 카테고리일 필요도 없다. 서비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나의 기능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확장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미 플랫폼의 모습을 갖춘 서비스가 될 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노정석 대표의 말처럼 방향성을 가진 진화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그냥 벌어지는 것. 강자생존이 아니라 적자생존인 것처럼 그 시기에 가장 적합한(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것이 살아 남아서 적자(適者)였다고 사후 해석될 뿐이다. 그렇기에 살아 남으려면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것은 체력이나 지력같은 어떤 능력보다, 변화의 동인을 인지하고 그것에 적응하는 것이니까.

김택진 사장님이 해 주신 말씀 중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세상의 많은 것들을 만들고 그것이 또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설계도(blueprint)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설계도라는 개념보다는 레써피(recipe)라는 개념에 훨씬 더 가깝다는. 설계도는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논리와 계산에 의해 나온 것이지만, 레써피는 계속해서 조금씩 바뀌어가며 자신만의 노하우처럼 몸에 익혀 쌓여 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플랫폼은 하루 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플랫폼은 어떤 전략으로 인해서 탄생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태계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진화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되, 언제나 발은 땅에 붙어 있는 것.
현실을 직시하되, 이후의 문화를 떠올리고 제시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유연성과 실력. 마지막으로 운까지.
플랫폼을 만든다는건 그렇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Posted by 김범준 김범준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