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2.11.05 08:14

어제 밤 10시부터 약 8시간 동안의 작업 끝에 오늘 새벽 6시쯤 서비스를 새로 개편하여 적용시켰다. 10/5에 처음 오픈했으니 꼭 한 달 만의 변화. 한 달만에 일어난 변화치고는 좀 큰 폭의 변화를 주었는데, 이 한 달 동안 또 다시 느낀 것은

  1.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2.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생각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일수학이 지향하는 바는 애초에 밝혔듯이 학생이 어떤 부분을 잘 모르고 어떤 부분을 잘 아는지 분석하여 학생에게 맞춤 문제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건 서비스를 개편한 지금도 변하지 않는 지향점이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느꼈던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없는 좋아 보이는 가치에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며, 당장 자신에게 명확한 가치를 줘야지만 움직인다는 것. 이것은 얼마 전에 썼던 '플랫폼을 하기 전에 살아 남을 궁리부터'라는 글에서 얘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뭔가 멋지고 대단한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작더라도 지금 당장 어필할 수 있는 확실한 가치가 명확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춤 컨텐트를 제공하려면 학생의 실력을 알아야 하고, 학생의 실력을 알려면 그 학생이 푼 결과에 대해 채점 결과를 입력받아야 한다. 이건 현재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지금 당장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맞춤 컨텐트를 주지 않는한 일어나기 힘든 일. 사람들이 변하려면 믿음을 줘야 하고, 그 믿음이 오랜 기간 동안 쌓여서, 믿을 수 있는 브랜드가 형성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든 맞춤 컨텐트를 제공하려면 채점 결과를 입력받아야 하기에 채점하지 않으면 만들 수 있는 문제지를 2개로 제한한 것은, 동네 조기축구회도 안 되는 수준의 축구팀이 입장료를 내야 우리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과 어찌 보면 비슷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일일수학 서비스를 통해서 지금보다 좀 더 수학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향점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변한 것은 그 지향점으로 가는 길이 지도 한 장 달랑 던져주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리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더운 사람에게 그늘을 찾아주어 믿음을 쌓아 가며 결국 사람들과 같이 서비스가 성장하는 그런 길이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된 것.

그리하여 일일수학 서비스는 과감하게 변화를 주어, 당분간 회원 제도 자체를 없애 버렸다. 회원 제도라는 것은 그 사람이 회원이 되었을 때 명확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어 정말 원해서 하도록 해야 하고, 그러한 요소를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 서비스의 경쟁력일테니까. 덕분에 전체적인 서비스 flow가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깔끔해진 것 같다.

그리고 현재 2학년 2학기 교과 문제만 제공하고 있었고(3학년 1학기 컨텐트를 업데이트 준비 중), 이러다보니 이 서비스에 대해서 viral marketing이 일어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1) 서비스의 대상이 되는 고객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쉽게 확산되지 못했고, 2) 기존의 교과 문제지는 한참 써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뭐라 추천해야할 지 아주 명확히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학년 수학 교과서 중, 계산이 중심이 되는 모든 단원에 대하여 그 단원에서 다루는 내용에 관한 연산 문제지를 오픈했다. 구몬학습같은 계산 위주의 문제지를 모두 제공하는 셈. 연산문제지는 엄마들이 얘기를 많이 나누는 카페에서도 항상 단골로 올라오는 자료였기에, 막상 연산 문제만 다룬 문제집을 사자니 좀 아까운 경우 쉽게 한 두 장씩 출력하여 프린트해서 풀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엄마들한테 좀 더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는 예전처럼 채점을 해야 답안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푼 문제지를 보고 바로 쉽게 답안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메뉴를 제공하고 QR코드 등도 제공하여 엄마들이 가진 핸드폰에서도 바로 답안지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QR코드가 많이 이용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모바일에서의 접근성을 최대한 높이고자)

사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또 다른 큰 키워드는 바로 모바일이다. 현재 모바일 앱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의 모든 링크에 대한 가장 강한 viral channel은 바로 카카오톡. 정보가 가장 많이 떠돌아다니는 곳이 카톡이기에, 거기서 바로 열어봤을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고, 모바일에서도 실제 프린트를 제외하고는(아이폰에서는 AirPrint 연결이 되어 있으면 프린트도 된다. 안드로이드는 앱을 만들어야 할 듯) 대부분의 기능을 쓰는데 문제가 없도록 만들려다보니 결국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회원 제도도 없애버리게 되었다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태블릿을 사용하는 경우라면, 정말 태블릿을 문제집처럼 사용하고 바로 연습장 갖고 문제를 푼 다음에 바로 답을 확인하는 형태로 써도 좋을 것 같기에, 모바일에서의 디자인을 먼저 고려하고 그 디자인을 웹에서 최대하는 수용하는 형태로 변화를 주었다.

회원/비회원의 구분을 아예 없애버리고(당분간은 회원 제도도 없는), 지금 당장 어필할 수 있는 핵심 컨텐트로 연산 문제지를 제공하고, 전체 서비스의 flow를 모바일 기준으로 바꾸는 이 과정은, 서비스의 작은 개편이 아니라 어찌 보면 pivoting에 해당하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가 정답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보다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만들어 내고 싶은 변화는,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없이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멋진 서비스를 만들어도 그 서비스의 가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누군가 불러주기 전에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마침 이러한 개편을 준비하면서 "무엇이 스타트업을 좌절시키나?"라는 글에서 발견한 Airbnb의 사례가 이번 개편을 준비하면서 힘을 내는데 도움이 되기도... Airbnb의 초기 아이디어는 컨퍼런스 참가자를 위해 AirBed(공기를 주입한 비닐 매트리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 )

실행을 해보기 전에는 정말 모른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는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이 완전한 대세가 되는 날이 오고, 그 시절에 이 분야의 정말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믿는 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서비스는, 언젠가 올 그 때를 상상하고 만든 정말 멋지고 좋은 서비스가 아니라, 아주 작더라도 그 때 그 때 확실한 가치를 주변서 사람들과 같이 성장한 서비스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일수학이 그런 서비스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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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범준 김범준티스토리
분류없음2012.10.25 22:24

오늘 일일수학 관련해서 '1인 교육벤처 붐'이라는 제목으로 일일수학을 소개한 기사가 났다. 이와 관련하여 트위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기사를 보니 기분이 좀 묘하다는 글을 썼는데, 그것에 대해 느끼는 바를 조금 더 얘기하려 이렇게 글을 쓴다.

기분이 묘하다는 것은, 그냥 예전 오픈마루 초창기 시절에 스프링노트 서비스를 오픈한 이후 여러 가지 기사가 났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였는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가 예전에 배운 것은 중요한 것은 '실제 고객'이지 언론이나 어떤 기관에서 인정해 주는 것은 그 서비스의 실질적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프링노트의 경우 2008년 말, 한국인터넷기업협회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인터넷 기업상에서 특별상(웹 2.0 부분)을 수상한 바 있다. (링크는 여기)  그러나 얼마 전 스프링노트 서비스는 폐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서비스를 처음 만들다 보면, 어떤 기관(?)으로부터 인정받는 것 또는 뭔가 기사를 통해 소개받는 것에 괜히 어깨가 으쓱하고 뭔가 한 단계 올라선 것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런 느낌은 오히려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데 독이 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고객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인데, 언론이나 어떤 기관에서의 평가는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를 제대로 못듣게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객은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만족시켜야만 움직이고, 밖에서 분석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의 평가는 그 평가라는 작업에 이미 녹아 들어 있는 프레임을 만족시켜야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이 둘은 굉장히 다른 얘기.

그래서 현재의 일일수학에 대해서도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플랫폼보다 서비스가 먼저인 것처럼, 서비스도 그 서비스를 통해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가치가 먼저가 아니라 사용자가 '보고싶은' 또는 '느끼고싶은' 가치가 먼저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주 간의 데이터를 살펴 보고서 small pivoting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주고 있고, 조만간 변화된 모습으로 오픈할 예정인데, 갑자기 기사가 나니 약간은 당황스러웠달까. 물론 기사로 다뤄주신 것은 정말 고맙고 감사드릴 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기사가 나와서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5년 전 오픈마루 시절의 초창기 때 기사 하나하나에 너무 크게 의미를 부여했었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지며 기분이 묘했던 하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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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범준 김범준티스토리
분류없음2012.10.22 00:50

'끈질기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된다.

'끈기'는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이라는 뜻이고,
'검질기다'는 "성질이나 행동이 몹시 끈덕지고 질기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끈덕지다'를 찾아 보면 "끈기가 있고 꾸준하다"는 뜻으로 써 있다.

가만히 살펴 보면 A(끈질기다)라는 단어를 정의하는데 B(끈기)와 C(검질기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B(끈기)라는 단어의 정의에서는 다시 A를 이용하여 정의하고 있고,
C(검질기다)라는 단어의 정의에 사용한 단어를 다시 따라가면 다시 B(끈기)라는 단어를 이용하고 있어서
뭔가 상호 참조 형태의 재귀적 정의인지라 사전에서 이렇게 설명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하는 궁금증이 든다. -_-;


각설하고, 갑자기 '끈질기다'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본 이유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성공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그 '끈질김'이라는 것도,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들이 보여 주는 멋진 인내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위의 사진처럼 하찮아 보이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실제로 몸을 부딪혀 해내는 그런 것을 뜻하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지나간 일들 중에서 작게나마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은,
뭔가 그 순간에 아주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무엇인가를 해결하여 다가왔던 것이 아니라
맘 깊숙이 있었던 절실함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끈질김과 만났을 때 생겼었던 것 같다.


# 1

1988년 중학교 1학년 때 나갔던 서울시 PC 경진대회. 6학년부터 집이 좀 어려워지기 시작해서 컴퓨터 학원을 다니던 것도 눈치가 보일 때였는데, 그 학원은 서울시/전국 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평생 학원비를 무료로 해 주는 곳이었다.

마지막 문제는 하노이의 탑 문제였는데, n개의 원반을 1번 기둥에서 3번 기둥으로 옮기는 순서를 출력하는 문제였다. 지금이야 재귀 함수를 이용하여 간단히 짜는 문제였지만 중학교 1학년 때 그런 걸 알리가 없고, 어떻게 해서든 입상하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하다가, n = 3일 때부터 n = 7일 때까지인가의 각 경우에 대해서 모두 손으로 풀어서 종이에 적은 다음에, 시험 시간 종료를 얼마 앞두고 종이에 적어 놓은 순서를 일일이 print 문으로 옮기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였다. (n = 7이면 순서가 127 단계가 나온다)

이 문제를 푼 아이가 거의 없다 보니, 서울시 대회에서 중등부 금상을 탔었고 그 덕분에 중학교 내내 학원비 걱정을 하지 않고 컴퓨터 학원을 다닐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문제를 출제한 의도에서 벗어나서 해결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다른 사람은 이 문제를 아예 풀지 못했고(않았고) 나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해 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발버둥을 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나 싶다.


# 2

1990년 10월인가 11월인가 서울과학고 입학 시험. 요즘은 과학고 입학 제도가 하도 복잡해서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데, 내가 시험볼 때는 입학시험을 보고 그 성적이 모든 것을 결정했던 것 같다. 중학교 재학 시절의 점수는 그냥 지원 자격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했던 것 같고 시험 한 번으로 입학 여부가 결정되었던 것 같다.

요즘이야 특목고를 보낸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난리인 것 같지만, 내가 시험볼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컴퓨터 좋아하고 수학 싫어하지 않으니 과학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쳤었다. 물론 꼭 가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 못지 않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중학교 때 배운 수학만 알면 되는줄 알고 시험을 치러 갔었다.

그런데 시험 문제를 살펴 보고 나니 정말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문제가 바로 다음과 같은 이중근호 문제였다.

 위와 같이 이중근호 식을 주고서, 객관식으로 다음 중 이 식의 결과값과 같은 것을 고르라는 문제. 그러니까 객관식 보기 중에서 √3 + 1을 골라야 하는 건데,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선행 학습했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으나 나한테는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전혀 감도 안 오는 그런 문제였다. 고민고민하다 결국 내가 한 일은 √3=1.732 정도 되니까 4 + 2√3 = 4 + 2 * 1.732 = 7.464이고, √7.464를 직접 계산하고 난 후에(말이 직접 계산이지 결국 소수점 하나하나 내려가 보면서 제곱해서 7.464가 나오는 수를 찾는 것이다), 모든 객관식 보기마다 값을 계산하여 가장 비슷한 값을 찾는 방법이었다. -_-;

이 외에도 도형 문제에서도 도저히 풀기 힘든 문제가 몇 개 있어서, 결국에는 자를 이용하여 5배 확대해서 문제의 조건을 만족하도록 몇 번을 지우고 그리는 것을 반복하여 적절한 도형을 작도한 다음에 실제로 자를 이용하여 길이를 잰 다음에 그 길이와 가장 비슷한 값을 객관식 보기에서 고르는 식으로 문제를 풀었었다. (임문수[각주:1] 선생님, 제가 이렇게 입학했다보니 수학 실력이... ㅠㅠ)

이것도 역시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푼 것은 아닐지 몰라도, 결국 저런 식의 접근 방법으로 문제를 4-5개는 더 맞췄고 3그 결과(턱걸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턱걸이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ㅎㅎ) 서울과학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3

1992년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 참가할 국가대표 4명을 뽑는 시험. 한 문제당 5시간의 시간이 주어지며 이틀에 걸쳐서 한 문제씩 총 두 문제를 푸는 시험이었다. 그 중 두 번째 날에 나온 문제는 용량이 각각 다른(그러나 3L, 5L와 같은 식으로 정확히 정수로 떨어지는) 여러 개의 물통이 주어졌을 때, 그 물통들만 이용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물의 양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모두 알아내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5L와 3L 물통 두 개가 있으면,
   1) 5L 물통은 비우고, 3L 물통을 가득 채운다.
   2) 3L 물통에 가득 차 있는 물을 5L 물통에 붓는다. (이 때 5L 물통에는 물 3L가 차 있게 됨)
   3) 비어 버린 3L 물통에 다시 물을 가득 채우고, 5L 물통이 가득 찰 때까지만 물을 붓는다. 
       (이 때, 3L 물통에 남은 물은 1L가 됨)
   4) 5L 물통을 다시 비운 후에, 3L에 있는 물 1L를 5L 물통에 채운다. (5L 물통에 물 1L가 있음)
   5) 3L 물통에 다시 물을 가득 채우고, 이것을 5L 물통에 추가로 부으면 5L 물통에 물 4L가 만들어진다.

위와 같이 물통들을 이용하여 물을 붓고 따르고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경우의 물의 양이 나오게 된다. 두 물통 모두 비어 있으면 0L이고, 두 물통 모두 다 차 있으면 3 + 5 = 8L의 양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각각 용량이 다른 여러 개의 물통이 주어졌을때, 그 물통들을 이용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물의 양을 모두 알아내어 표시하는 것이었다. 만약 3L와 5L 두 개의 물통이 주어진 경우 0L, 1L, 2L, ... , 8L까지 모두 9가지 경우를 표현할 수 있다.  

이 문제의 출제 의도는, 체스 문제를 컴퓨터로 구현할 때와 비슷하게 각 물통에 물을 붓고 따르고 하면서 변화되는 상태들을 컴퓨터로 잘 표현하고 그러한 여러 상태를 탐색하는 알고리즘을 잘 구현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었는데, 프로그램을 작성하다보니 잘못 꼬여버려서 4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내가 완전히 프로그램을 잘못 짠 것을 알았다. OTL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조급해진 상황에서, 문득 든 생각은 뭔가 규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그리고 예전 버릇 못 버린다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물통의 개수가 2개부터 5개까지, 그리고 각 경우마다 물통의 용량으로 주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늘어 놓은 후에 실제로 손으로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알아낸 규칙!!!

0L부터 n개의 물통 용량의 합까지, 

n개의 물통의 최대 공약수만큼 증가하며 모두 표현할 수 있음! 

그러니까 만약 물통이 2L, 3L, 5L짜리 세 개면 0L, 1L, 2L, ... , 9L까지 10가지 경우를  표현할 수 있고,
주어진 입력이 5L, 7L, 10L 이렇게 주어졌다면 0L, 1L, 2L, ... , 22L까지  23가지 경우를 표현할 수 있고,
주어진 입력이 4L, 6L, 10L 이렇게 주어졌다면 0L, 2L, 4L, ... , 20L까지 11가지 경우를 표현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 제출 마감 시간이 10분 남은 상황에서 간신히 저 규칙을 알아내었고, 규칙 자체는 워낙 간단한지라 5분 동안 구현하고 5분 동안 테스트하고서 시험을 마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시험 성적은 주어진 입력 값에 대해서는 모두 정답을 출력하였으나, 문제의 의도와 다르게 풀어서 실제 조교 형들이 프로그램 소스를 살펴 본 후 채점한 부분에서는 거의 대부분 0점을 맞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4명 뽑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아슬아슬하게 4등으로 선발되었다.

.

어쩌면 나만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맘 졸이며 고비를 넘겨 온 건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 대학교 때 만났던,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천재같은 친구와 선배들(그리고 후배들)은 나처럼 저렇게 구질구질하게 하지 않고도 우아하게 여러 관문들을 손쉽게 통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나보다 더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난 많은 사람들 중에, 곰인형에 눈붙이기가 싫어서, 잠깐 하다가 그 지루한 반복에 진절머리가 나서,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이 있던 것은 사실일게다. 그리고 내가 그러지 않았기에 지금 이렇게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추억들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나는 우아한 일을 꿈꾸지 않는다. 
우아하고 멋있는 일은,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이 나보다 더 우아하게 잘 할 것이기에,
내가 취해야 할 강점이라는 것은 비록 우아하지 않더라도 끈질기게 붙어서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자 다행인 것은,
학교에서 교과서나 논문을 통해 익혔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 현실은 우아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전에 여러 시험이나 대회에서 문제를 출제했던 선생님과는 달리,
고객은 자신이 받는 가치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가치를 어떻게 만들어냈는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도.
[각주:2]

.

{A * B - (C + D) / E} / F 또는 A * {(B + C - D) / E - F}와 같은 식들에 적절한(중간 계산 결과가 음수도 나오면 안 되고 나눗셈도 딱 떨어지는) 숫자들을 어떻게 자동으로 생성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각각의 식 유형마다 몇 십개씩 실제 숫자가 들어간 식들을 넣어 놓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앞으로 달리기 전 스스로 다짐하는 차원에서 글을 작성함. ㅎㅎ



  1.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자 수학 선생님. [본문으로]
  2. 요즘은 '공정 무역'과 같은 프로세스를 언급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그 부분은 고객이 '착한 소비'라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부분이라 그것 또한 직접 전달하는 가치의 한 종류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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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범준 김범준티스토리